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쳐따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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카테고리 없음 2017. 6. 20. 08:35

종결,


 옅은, 간장이 익는 냄새가 향긋하게 나고 있었다.

 나는 그 시점에서,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.








 모든 것을 잃고, 도망치듯 도착했던 그 겨울 속에서, 따뜻하게 웃으며 나를 받아주는 당신을 바라보며,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느 책에나 등장했던 것처럼 다정하고 따뜻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.

 나를 바라보는 시선, 건네는 말, 행동, 몸짓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서, 내 몸이 온통 찢겨 나가는 듯한 감정이었다. 이슈가르드에서는 볼 수 없는 푸른 하늘빛이 나는 은발과 우직한 표정, 언제나 당신이 지나가는 곳에서 들려왔던 체인 메일의 작은 마찰음들.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, 여전히 당신의 조각들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몸 이곳 저곳에 박혀 있었다.





 차마 좋아한다는 말도 건네지 못했던, 비릿한 바다 내음이 나는 사랑. 너무 어리고 어렸던, 뭉툭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이 갈 곳을 잃고 내 마음 한 곳에 침식되어가고 있을 때, 당신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. 가슴의 상처도, 어떤 고통도 없는 웃고 있는 얼굴을 한 채로 서 있는 당신에게 다가가, 나도 역시 어설픈 미소를 지어보였다.



 "꿈이네요. 역시...,"

 "......"

 "대답조차 들을 수 없는 건가요?"



 당신은 그저 말 없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만 있었다. 커르다스의 차가운 겨울 바람이 아닌, 따뜻하고 향기로운  꽃내음 가득한 라벤더 안식처에서, 당신은 여느 때처럼 나에게 예고조차 하지 않고 내 꿈 속까지 침범해 있었다. 깨어나고 싶어도 깨어날 수 없고, 다시 꾸고 싶어도 꿀 수 없는, 너무나도 이기적인 그 공간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.



 "오르슈팡 경, 나...,"

 "......"

 "새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."

 "......"

 "덕분에 예전처럼 다시 창을 잡을 수 있었어요. 아이메리크 경과 에스티니앙 경도 도와드릴 수 있었고,"

 "......"

 "더 이상 감정을 숨길수도 없게 되었어요."

 "....."

 "이런 나를, 미워할 건가요?"



 "-잘 된 일이 아닌가, 맹우여."



 아아,


 아마 마지막으로 들을 수 있는 당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다. 차마 손을 잡지도 못하고 당신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저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채로 계속해서 슬픔을 토해내었다. 당신은 젖은 뺨을 닦아주지도, 울지 말라는 말도 건네주지 않았지만, 그 온화하게 웃고 있는 얼굴만큼은 사라지지 않아서, 나 역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.













 옅은 간장이 타는 냄새가 났다.


 젖은 베개의 감촉이 생경하게 남아있었고, 깜빡거리며 무거운 눈꺼풀을 떴을 때에는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. 꽤 오랫동안 울었던 것일까, 머리는 무거웠고 목소리는 무언가에 꽉 틀어막힌 듯 나오지 않았기에 멍하니 침대에 누워 있으니, 익숙한 손길과 목소리가 따라왔다.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짓, 뺨에 남은 눈물 자국을 모른 척 해주는 다정한 목소리.



 "일어났어요? 나인,"

 "......."



 다정하게 맞잡아 오는 손. 끌어당겨지는 힘에 꿈에서 빠져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. 아직 가누기 힘든 몸을 당신에게 기대며,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. 아마, 당신의 품 안에서 조금 더 울었던 것만 같다. 어깨와 등을 토닥이는 커다란 손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.

 지금에 내게도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란 몸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었다. 이 커다란 감정의 칼날이 지금은 깊게 박힌 채로 그 고통에 익숙해져, 아마 달콤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. 조금만 틀어져도, 사이가 조금이라도 엇나가버리면 칼날은 비틀려 더욱 살점을 파고들겠지.



 "위스 씨,"

 "네."

 "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줘서 고마워요."



 그래도 당신이 있었기에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.

 나는 앞으로도 더 당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.




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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